맥주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맥주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왜 회사에서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술을 소재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조직에 무슨 소용이냐는 뜻입니다.
2021년 교육원을 열고 지금까지 100곳이 넘는 기업과 기관에서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반복해서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시음 워크샵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맥주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트이는 것입니다.
시음 클래스에서 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틀린 답은 없습니다"입니다.
같은 맥주를 마시고도 어떤 분은 자몽 향이 난다고 하고 어떤 분은 솔잎 같다고 합니다.
둘 다 맞습니다. 홉에 들어 있는 성분이 사람마다 다르게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드리면 그때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대부분은 정답이 있는 대화입니다.
맞는 판단과 틀린 판단이 있고, 틀리면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확신이 없으면 입을 다물게 됩니다. 연차가 낮을수록 더 그렇습니다.
시음은 이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자리입니다. 감각에 관한 진술이라 반박 당할 일이 없고,
오래 다닌 사람이 더 잘 아는 것도 아닙니다. 입사 3개월 차가 부장보다 향을 잘 잡아내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그 순간 자리의 공기가 바뀝니다.
술자리와 시음 자리는 다릅니다
술이 사람을 편하게 만든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편해지는 것은 마시는 쪽이고,
마시지 않거나 적게 마시는 사람에게 술자리는 견디는 시간입니다. 회식이 조직에서 점점 밀려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시음 워크샵은 구조가 다릅니다. 마시는 양이 정해져 있고, 잔은 작고, 프로그램의 중심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하는 것입니다.
종료 시각도 명확합니다. 술을 드시지 않는 분은 향과 색을 살피는 부분에 참여하시면 되고, 그 자리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술이 대화를 여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대화를 열고 술은 그 안에 놓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오히려 적게 드시는 분들이 더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자기 취향을 이야기하는 사례도 많았고,
비록 마시기 못했지만 새로운 맥주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면서 구매처를 물어보시던 임신 상태의 사원분도 있었습니다.

공통의 기준이 하나 생깁니다
워크샵이 끝나고 몇 주 뒤에 담당자께 연락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누가 맥주를 고르면서 "이건 그때 배운 그 스타일이네"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아 보이지만 이것이 워크샵이 남기는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에 공통의 기준이 하나 생긴 것입니다. 업무와 무관한 영역에서 같은 언어를 나눠 가진 사람들은 업무 이야기도 조금 다르게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이 조직에 남기는 것을 저는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날 하루의 분위기가 아니라 그 이후에 반복될 수 있는 무언가입니다.
맥주를 소재로 삼는 이유
마지막으로 자주 받는 질문 하나를 더 답하겠습니다. 왜 하필 맥주냐는 것입니다.
와인은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가격대와 격식이 따라오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위스키는 도수가 높아 프로그램 중심에 놓기 어렵습니다.
맥주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마셔본 술이면서, 동시에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는 술입니다.
익숙한데 모르는 상태입니다.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빠르게 변화를 체감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두 시간이면 라거와 에일을 구분하게 되고, 그 구분이 다음 주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바로 쓰입니다.
배운 것이 곧바로 쓰이는 경험은 교육에서 생각보다 드뭅니다. 맥주 교육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한국맥주교육원 원장 김만제 독일 VLB Berlin 브루마스터 과정 수료, 『The Beer 맥주 스타일 사전』 저자
한국맥주교육원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맥주 전문 교육기관입니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 등록 학원(제3324호)이며,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시음 클래스, 양조 실습, 인문학 강의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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