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작성하는 글은 지난 에피소드인 'No.011 기본재와 특수재' 를 읽고 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맥주의 스타일은 대략 110개 정도로, 에일에 약 70개 , 라거에 약 40 개가 분포해있다.
라거에서 왼쪽으로 파생된 노란색으로 색칠된 원은 '페일 라거' 스타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본재 라거 맥주의 전형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맥주 = 라거로 생각하고 있고, 라거 = 페일 라거의 이미지로 인식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은 맥주를 청량하고 가볍고 연하고 쓰지 않으며 여름에 마시기 좋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다.
라거와 에일의 차이는 효모 발효 종과 발효 방식에 따른 차이일 뿐, 모든 라거 맥주가 페일 라거와 같은 경향을 지니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페일 라거와 같은 깔끔하고 연한 느낌을 지닌 라거 맥주가 일부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워낙 라거의 이미지가 고정관념화 되다 보니 발생하는 인식과 상황들이 있다. 특히 음식과의 페어링에서도
라거 맥주는 맵고 짠 음식과 페어링, 기름진 음식, 한식과 어울리는 라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해당 이야기는 페일 라거와의 페어링을 이야기하는 경우이고, 만약 화자가 명확하게 페일 라거라는 언급을 해주었다면
개개인의 미각적 취향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는 않으며,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맥주 스타일 분류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대중적인 멘트인 것을 알기에 본인도 어느 정도 맥락에 맞춰 듣긴 하지만,
다만 앞서 설명했듯이 라거 = 페일 라거가 동일시되는 상황이 누적되고 반복될 수록, 라거의 이미지는 바꾸기 더 어려워진다.
맥주를 본격적으로 학습하고 탐구하는 사람들은 페일 라거류가 아닌 나머지 38가지의 라거타입 맥주들을 점점 접하게 되는데,
그런 학생들 및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제가 지금까지 라거(Lager)맥주의 정말 일부분만 알고 있었어요"

라거(Lager) 맥주의 스타일 중 하나로 독일의 도펠복(Doppelbock)이 있다.
가장 유명한 제품은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양조장 파울라너(Paulaner)가 만드는 살바토르(Salvator)다.
해당 맥주의 역사적 배경 스토리는 맥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워낙 유명한데,
17세기 독일 뮌헨의 파울라너 수도원에서 사순절 금식기간에 고체음식은 못 먹고 액체는 섭취할 수 있기에
많은 유럽의 수도원 맥주들이 그러했듯 영양분이 높은 맥주를 만들어서 수도사들이 소비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도펠복은 매우 진하고 맛있었기에 금식기간에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다가왔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로마 교황청에 도펠복 맥주를 보내어 정식으로 허가를 맡기로 했다.
뮌헨을 출발한 맥주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가로질러 로마에 도착했으나, 17세기였으니
냉장보관X, 살균X 된 맥주는 로마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맛이 가버린 상태였다.
이를 마셔본 교황은 끔찍한 맥주를 마시는 뮌헨의 수도사들은 단식 기간에 진정한 고행을 하고 있다고 판단,
도펠복 맥주가 사순절에 교황이 허락한 맥주가 되어버렸다.
맥주의 이름인 'Salvator' 는 구원자라는 의미로, 금식기간 수도사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역할이었기에 붙여졌다.
그래서 현재도 파울라너 양조장의 Salvator 를 홍보하는 이미지를 보면 빵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맥주를 액체빵이라고 부르게 된 것에 큰 단초를 제공한 맥주들 중 하나가 Paulaner Savator Doppelbock 이다.
독일의 도펠복(Doppelbock) 스타일은 평균적인 알코올 도수가 7~8% 정도이며, 갈색-마호가니 색상을 띈다.
맥아에서 기인한 카라멜이나 연한 초콜릿, 말린 과일 같은 단맛이 풍부하며 곡물 빵 등의 고소함이 매력적인 맥주다.
맥아적인 단맛이 풍부하다는 것은 맥주의 무게감 자체도 기본 Medium-Full Body 는 장착했다는 것으로,
분명히 독일 라거 효모로 발효한 맥주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페일)라거의 청량감과는 매우 거리가 멀며,
그렇기 때문에 치킨이나 매운 음식 등과의 페어링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디저트나 갈색 소스의 무거운 육류와 어울린다.
독일에는 그런 도펠복을 더 강화시킨 아이스복(Eisbock)이라는 전통 맥주 스타일이 있는데,
고도수 맥주 전문 기믹으로 유명한 독일 쇼르슈(Schorsch) 양조장의 Eisbock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Worlds Strongest Lager 16% 라는 문구가 눈에 띄며, 해당 제품은 독일 전통 맥주 스타일의 복각으로
장난스럽게 만든 맥주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바 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제맥주에서 주력으로 판매하는 IPA 에서 나오는 홉의 맛을 에일이라서 많은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페일)라거에서는 뚜렷하고 강렬하며 씁쓸한 홉의 맛을 느껴본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에일은 쓰고 라거는 순하며,
과일향이 나면 에일이고 라거는 순수하게 만든 맥주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사실 홉(Hop)은 라거와 에일을 가리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라거와 에일은 효모에 따라 갈리는 것이지, 홉의 캐릭터나 많냐 적냐로 나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2000~2010년대 초반까지 IPA 의 파생 상품으로 유명했던 스타일로 IPL 이 있다.
IPA 는 India Pale Ale 의 약자인데, IPL 은 그 끝을 Lager 로만 바꾼 표현이며, 실제로도 라거 효모로 발효했다.
IPA 에서 기대할 수 있는 홉의 강렬한 시트러스와 씁쓸함은 유지한 채, 효모만 라거 효모로 바꾼 것으로,
라거 특유의 깔끔한 발효 맛을 구축하여 홉의 맛이 부각되도록 설계한 것이 IPL 의 정체성이다.
쉽게 설명하면 카스, 아사히, 테라와 같은 (페일)라거도 홉의 느낌을 많이 살리면 IPL 이 될 수 있다.
다만 홉의 풍미가 낯선 대중들이 많기에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테지만, 대기업 라거 브랜드들도 시대 변화에 맞춰
수제맥주적인 요소를 넣은 제품들을 만들 필요를 느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일본 맥주시장이 그런 상황인데, 오른쪽에 있는 제품은 우리가 아는 그 일본의 기린이 만든 제품이 맞다.
Grand Kirin JPL 이라는 제품으로 IPL 의 I 를 제페니스의 J로 대체한 제품이었다.
2020년대 중반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IPL 의 개념은 Cold IPA 라는 스타일로 그 컨셉이 계승되고 있다.

영국의 전통 에일 맥주 스타일로 포터(Porter)가 있는데, 그 포터 맥주가 18~19세기 북유럽 발트해 연안 국가로 수출된다.
발트해 국가들로는 폴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핀란드, 러시아 등등이 해당하며,
영국의 포터 맥주가 인기 있었지만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때도 많았기에
발트해 국가 현지 양조장들은 영국의 포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영국의 포터를 모방한 맥주들은 다소 다른 점이 있었으니 라거 효모로 발효한 것으로,
이를 발트해 국가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발틱 포터(Baltic Porter)라고 부른다.
영국의 대표적인 다크 에일인 포터(Porter)를 모델로 한 맥주인 만큼
맥아에서 나오는 맛은 포터와 매우 흡사한 초콜릿, 견과, 검붉은 과일, 은은한 커피 등의 맥아 맛이 위주이나
라거 효모로 발효하였기에 발효 맛이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은 발틱 포터만의 특징이며,
고전적인 포터 맥주의 체급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에 현대에도 평균 알코올 도수가 7~10% 에 이른다.
국내에도 들어오는 맥주 브랜드인 리투아니아의 볼파스 엔젤맨도 현지에서 발틱 포터를 만들고 있는데,
대중성을 생각해서 낮은 도수로 만든 것이 6.0% 이며, 위의 폴란드 맥주 양조장 Zywiec 는 폴란드의 OB, Hite 와 같은 포지션인데,
폴란드의 발틱 포터 문화를 지속하기 위해 대중 브랜드임에도 여전히 9.5%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발틱 포터도 도펠복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이 체급이 있기 때문에 라거 특유의 깔끔한 발효 맛과는 별개로
해당 체급의 어두운 맥주들이 가져가는 Medium-Full Body 를 지닌 맥주이기에 통상적인 (페일)라거와 속성이 아예 다르다.
글이 너무 길어질 수 있기에 나머지 38가지의 라거 맥주들 중 일부분만 언급하게 되었지만,
"이게 라거야?" 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수 있는 라거 스타일들은 더 많이 있다.
독일의 훈연맥주인 라우흐비어(Rauchbier)라던가,
No.009 글의 주인공이었던 옥토버페스트 메르첸 라거,
라거임에도 효모취가 매력적인 켈러비어(Kellerbier)도 있고,
붉은 라거의 대표주자 비엔나 라거(Vienna Lager),
부활절부터 5월까지 봄에 마시는 체급 있는 라거 맥주 마이복(Maibock),
요즘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자주 다루는 West Coast Pilsner 등도 있다.
2019년인가, 그 쯤에 1-Day Class 의 테마로 '라거의 세계' 라는 클래스를 진행한 바 있는데,
당시 대중맥주를 주로 소비하는 참가자들이 많았었고, 사전 공지를 충분히 읽지 않은 참가자라면
아마 편의점 라거 맥주 브랜드 세계를 생각하고 왔을텐데 동떨어진 라거가 나오니 많이 당황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본재 (페일)라거 맥주에 익숙하고, 독특한 라거들을 접할 기회나 정보가 없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내부적으로 진행했던 시음강의도 '라거' 가 주제는 아니었지만 독특한 라거들이 제공되었고,
참여한 수강생들이 라거에 대한 선입견을 깰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남겨 주었는데,
이처럼 맥주를 점차 알아간다는 것은 라거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 에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늘은 라거에 대한 글을 썼으니 다음에는 에일에 대한 편견과 관련된 글을 쓰지 않을까 본다.
MBTI 의 N 의 관점에서 상상해보려 한다. 라거(Lager)를 의인화해서 라거의 입장으로 들어가 본다면 이렇지 않을까?
"사람들이 에일(Ale) 그 친구보다 나를 더 찾아주는 건 고맙지만, 나를 너무 약골 이미지로만 보는 것은 많이 아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