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작부터 부끄러운 이야기 일 수도 있으나, 한국맥주교육원은 진행하는 행사나 교육을 외부에 이야기/PR 을 안 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한국맥주교육원의 활동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홈브루 교육, 시음 코스, 씨서론 강의 정도만 한다고 생각한다.
맥주SSUL 003 에피소드인 '한국맥주교육원의 1-Day Class 발자취' 라는 글을 시작으로
한국맥주교육원에서 진행했던 or 진행하고 있는 행사들에 대한 소개 및 방식, 후일담에 대한 글을 쓸 것이라 밝힌 바 있는데,
이번 에피소드가 본격적인 첫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일들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기본재 맥주에만 머물러 있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특수재 수제맥주로 끌어 올 것 인지에 대한 방향을 찾는 것으로,
한국맥주교육원은 불평만 하지 않고 스스로 여러 활동을 통해 이를 실천하려 한다.
이미 한국 맥주 시장에는 국내 양조장 수제 맥주든, 수입 맥주든 실력 좋고 기라성 같은 맥주들이 충분히 판매되고 있지만,
일반 대중들은 그런 맥주들에 대한 존재조차 모르기 때문에, 사업에 어려움을 겪거나 파산하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즉, 맥주만 잘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주겠지 라는 제조업 마인드에서 벗어나
잠재 소비자들에게 수제맥주 컨텐츠를 알려서 관심을 갖고 소비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활동은 수제맥주 업계인이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 알려줄 사람은 없다.
한국맥주교육원을 운영하면서 당연히 비즈니스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사업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사실상 대중과 접점이 있는 유일한 맥주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특성 상.. 딱히 누가 시킨 것도 아님에도
수익과는 관련 없는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일들을 많이 해야 된다는 의식이 원장-부원장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맥주교육원은 양조장/펍 등이 할 수 있는 영역과는 다르게 교육원의 방식 대로 이를 풀어나가려 했는데,
그런 활동들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하는 'Beer Tasting Survey' 이다.
EP.003 '한맥원의 1-Day Class 발자취' 라는 글에서도 밝힌 바 있듯,
한국맥주교육원은 그간 맥주 클래스-교육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맥주를 알려왔었는데,
교육-강의-클래스라는 용어가 주는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러면 그런 사람들과는 어떻게 행사를 만들어야 접점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왔다.
학생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좌담회라는 소비자 반응 평가 같은 행사들을 신청해서 참가한 적이 있는데,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제품에 대한 솔직한 의견, 식품일 경우에는 맛 평가 등등을 해주는 일이었다.
이를 착안하여 기본재 맥주만 알고 있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수제맥주판 서베이를 해보는건 어떨까? 생각했었고,
한맥원이 기획만 잘 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 올해부터 진행하게 되었다.
다행히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맥주 수입사들이 행사 취지에 공감해주셔서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러면 맥주의 어떤 부분을 기본재 소비자들로부터 의견을 받으면 좋을까? 를 고민해 보았는데,
일반 소비자들을 데리고 BJCP 스타일 가이드라인에 항목에 맞춰서 의견을 받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일이기에,
딱딱하지 않은 편한 질문들을 던져서 답변을 이끌어 나가야겠다고 방향을 설정했다.
실제 'Beer Tasting Survey' 를 진행했을 때 제공되었던 맥주 사례로 예를 들어보려 한다.
수제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브랜드의 맥주인 St.Bernardus Wit 을
서베이에 참가하는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때 질문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적혀있다.
1. 시음한 맥주의 맛과 향, 질감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2. 맥주 라벨 디자인 및 외관에서 오는 첫 인상?
3. 지금 시음했던 맥주의 한 병/캔 당 예상 가격?
4. 어떤 분위기와 상황 그리고 어떤 음식에 어울릴 것 같나요?
1번 질문은 당연히 참가자들이 기본재 맥주만 시음했던 초보이기 때문에 분명 조사 대상의 맛이 낯설 것이고,
맥아,홉,효모 발효 맛 등의 맥주 풍미를 서술하는 문구들도 당연히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대부분 소비자들은 맥주 평가방식을 알고 즐기는 경우가 없기에, 전문적이지 않은 평가가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데,
행사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참가자들에게 맛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부담 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라 하고 있다.
더불어 초보일 수록 주변 사람들의 감탄사나 표정 및 반응 등에서 자신의 평가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만약, 사워 맥주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던 사람이 함께 온 친구가 마실 때 마다 "으악, 으악" 하면서 표정을 찡그린다면
중립적이던 자신의 평가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갈 수 있기 때문에, 맥주를 시음하며 노트를 작성하는 시간에는
참가자들끼리 상호 의견 교류 및 감탄사 사용 등을 금할 것을 오리엔테이션 때 공지하고 시작한다.
참가자들끼리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은 모든 참가자들이 1~4번 까지 작성을 마친 후로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할 수 있고, 적은 노트 종이를 바꿔 보기도 하는데 이 때 나오는 서로 다른 평가가 나름 재미 요소.
2번 질문은 맥주에 판매에 있어 엄청 중요한 요소로, 맥주라는 내용물이 아무리 좋아도 라벨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사람들 입장에서는 눈길도 가지 않고, SNS 에 사진을 찍어 올려도 예쁘지 않기에 선택에서 밀리게 된다.
즉, 맥주 디자인의 세련미, 고풍스러움, 촌스러움, 눈에 띔, 폰트 등등이 어떤 지에 대한 질문이다.
서베이에서는 병/캔으로 제공되기에 당연히 라벨 디자인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고, 750ml 코르크 마감 제품들이나
오르발(Orval), 시메이(Chimay)처럼 병이 특이한 맥주라면 그 부분도 디자인 영역이기에 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뭐, 맥덕들한테는 St.Bernardus 의 방긋 웃는 수도승 할아버지 그림이 사실상 신뢰 받는 퀄리티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런 정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볼 빨간 할아버지가 그냥 웃긴 라벨처럼 보일 수도 있다.
3번 질문은 가격에 대한 부분이다. 당연히 처음 보는 맥주일테니 참가자들은 가격을 모를 수 밖에 없을거고,
바틀샵 등의 소매점에서 구매한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1병/캔 당 예상 가격을 적게 한다.
(펍/바에서 구매할 때는 가격이 더 높을 수 있으니 소매점 가격으로 묻는 것을 오리엔테이션에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진행하면서 이 때도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 꽤 흥미로운데,
같은 맥주를 두고 누구는 3,000원이라고 매기는데, 또 어떤 이는 12,000원이라는 가격을 적기 때문이다.
살짝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에서 비전문가 패널들이 문화재의 가격을 매기는 상황과 비슷하다.
4번 질문은 참가자들이 사실상 기본재 라거만 경험했기에 그간 맥주는 청량하게 마시는 것, 치킨과 함께, 여름에 마신다 등등
한정된 상황에서 즐기는 것 만을 경험하고 생각했을텐데, 막상 서베이로 접해본 맥주는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맥주는 배불러서 못 마신다 생각했는데, 이런 만족감의 맥주는 배부르게 마실 필요가 없겠구나.
여름이 아닌 가을이나 겨울에도 어울리는 전용 맥주들이 있구나.
오히려 지금과 같은 풍미의 맥주는 이런 안주와 궁합이 맞겠구나.
이런 디자인의 맥주는 연말 행사나 모임 때 와인 대용으로 즐기기 좋겠구나.
참가자 스스로 해당 부분을 새롭게 느껴보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넣은 항목이다.

4번 질문까지의 답변 작성과, 상호간의 의견교류가 적당히 마무리가 되면,
한맥원의 진행자가 나서서 해당 맥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시간이 시작된다.
St.Bernardus Wit 에 대한 것이라면 우선 어떤 스타일의 맥주인지에 대한 이야기와
벨기에식 밀맥주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코리엔더(시드)와 오렌지 껍질에 관한 부분 등의 맛의 요소,
라벨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 및 라벨에 얽힌 간략한 스토리 등도 설명해준다.
St.Bernardus Wit 이라면 라벨보다는 피에르 셀리스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며,
벨기에식 밀맥주에서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는 호가든이지만 가장 어센틱한 레시피로 만들어진 것은
현재 St.Bernardus Wit 라는 부분도 참가자들에게 알려준다.
이후 3번 질문인 소매점 기준의 평균 가격에 대한 정보를 주면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4번 질문에도 정석적인 페어링 메뉴를 알려주고 해당 맥주 스타일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분위기 등도 설명한다.
한맥원 진행자의 모든 설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5번 질문이 있다.
5. 가격 정보 및 스토리텔링 등을 알고 난 후, 해당 맥주에 대한 구매 의지가 바뀌었나요?
결국 소믈리에나 펍 매니저들의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가 맥주에 대한 썰과 마셔야 하는 이유 등을 알려주며
소비자가 그 맥주 구매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졌어도,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이 되어도,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5번 질문은 개개인의 입맛의 취향과도 연결되지만, 해당 맥주에 얼마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도
미리 물어본 3번 질문과 함께 연계가 된다. 개인적으로 해당 행사를 진행하면서 긍정적으로 보았던 부분은
5번에서 구매 의사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참가자들이 상당수 있는 편이었다.
충분한 맥주 설명 서비스와 접근성 좋은 구매처들만 뒷받침이 된다면 수제맥주 시장도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올해 3월 서울 발산동의 Bottlelist 에서 진행한 Beer Tasting Surbey 현장)
OK.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세팅은 완료가 되었는데, 그럼 가장 중요한 서베이 참가 인원은 어떻게 모으느냐?
사실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이 명확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부터 기획했던 것이 올해에야 이뤄지게 되었다.
Survey 로서, 데이터로서, 한맥원에게 딱히 수익이 크게 나오는 행사가 아님에도 진행하는 취지에 맞으려면
기본재 맥주 초보 소비자들을 안정적으로 모아 줄 수 있는 풀(Pool)이 필요한 것인데,
한맥원의 SNS 로 자체적으로 모집을 했다가는 해당 맥주를 이미 아는 사람들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비자 확장성이 목적인 행사인데, 확장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거저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행사라는 인식이 생겨서
소위 "잘~ 먹고 갑니다!" 의 상황만 생기면, 한맥원 입장에서는 시간,노력,비용을 들여 행사를 굳이 진행할 의미가 없다.
따라서 고객 서비스 차원의 이벤트를 평소에 진행하는 수제맥주 판매점들과 함께 Survey 를 진행해 보았는데,
서울 발산동의 'Bottleist' 와
서울에 직영 매장이 많은 '사운드 온 더 펍' 이 취지를 이해하고 초보 고객들을 모집해 주셔서
이 장소들에서 여러 차례의 Beer Tasting Survey 를 진행해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려면 체험 이벤트와 같은 느낌으로 풀어나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당연히 제공되는 맥주들은 참가자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맥주 경험이기에 이 부분에서는 결이 맞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간간히 시간이 날 때마다 해당 이벤트는 마음이 맞는 업체들과 진행해 볼 예정이고,
진행해 보면서 더 나은 방향이나 보완점 등을 찾아 나가 볼 것이다.